If one looks up at a moonless, dry-season, tropical night sky, one sees a glittering canopy of stationary stars, connected by nothing but darkness visible and the imagination. The serene beauty is so immense that it takes an effort of will to remind oneself that these stars are actually in perpetual, frantic motion, impelled hither and yon by the invisible power of the gravitational fields of which they are ineluctable, active parts.
- Benedict Anderson, Under Three Flags (2005): opening line.
Scarborough Faire
‘O, where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e’
Savoury, sage, rosemary, and thyme;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For once she was a true lover of mine.
And tell her to make me a cambric shirt
Savoury, sage, rosemary, and thyme;
Without any seam or fine needle work,
And then she’ll be a true lover of mine.
And tell her to wash it in yonder dry well
Savoury, sage, rosemary, and thyme;
Where no water sprung, nor a drop of rain fell,
And then she’ll be a ture lover of mine.
Tell her to dry it on yonder thorn,
Savoury, sage, rosemary, and thyme;
Which never bore blossom since Adam was born,
And then she’ll be a true lover of mine.
And when you have done and finished your work,
Savoury, sage, rosemary, and thyme;
You may come to me for your cambric shirt,
And then you will be a true lover of mine.
Text melody from William Cahppell, Old English Popular Music,
supplement by Frank Kidson, ‘Traditional Tunes’.
Arrangement Joel Frederiksen.
Ensemble Phoenix Munich
Joel Frederiksen
Handel - Chaconne in G Major, HWV 442.
헨델 - 샤콘느 G장조, HWV 442.
리처드 이가, 하프시코드
Richard Egarr, harpsichord
이 헌장의 당사국 정부는 그 국민을 대신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서로의 풍습과 생활에 대한 무지는 인류 역사를 통하여 세계 국민들 사이에 의혹과 불신을 초래한 공통적인 원인이며, 이 의혹과 불신 때문에 그들의 불일치가 너무나 자주 전쟁을 일으켰다. 이제 막 끝난 무서운 대전쟁은 인간의 존엄, 평등, 상호존중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부인하고, 이러한 원리 대신에 무지와 편견을 통하여 인간과 인종에 대한 불평등이라는 교의를 퍼뜨림으로써 일어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문화의 광범한 보급과, 정의·자유·평화를 위한 인류 교육은 인간의 존엄에 불가결한 것이며 또한 모든 국민이 상호원조와 상호관심의 정신으로써 완수해야 할 신성한 의무이다. 정부의 정치적·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세계 국민들의 일치되고 영속적이고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 따라서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헌장의 당사국은 교육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고 평등하게 주어지고 객관적 진리가 구속받지 않고 탐구되며 사상과 지식이 자유로이 교환되어야 함을 확신하면서, 국민들 사이의 소통수단을 발전시키고 증가시키는 동시에,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생활을 더욱 진실하고 더욱 완전하게 알기 위하여 이 소통수단을 사용할 것을 동의하고 결의한다. 그 결과 당사국은 국민들의 교육·과학·문화상의 관계를 통하여, 국제연합의 설립 목적이며 또한 그 헌장이 선언하고 있는 국제평화와 인류공동의 복리라는 목적을 촉진하기 위하여 여기에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를 창설한다.
유네스코 헌장(UNESCO Constitution), 1945년 11월 16일.
“정부의 정치적·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세계 국민들의 일치되고 영속적이고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 따라서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두에게는 저러한 기억이 있다. 평생 겪지 못했던 키스를 잊지 못하거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말하지 못했던 사랑 때문에 안타까워한다. 없지만 있는 기억. 너무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혹은 간절히 원치 않았기에, 그런 기억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바람과 상관없이 기억은 자체적으로 솟아난다. 얼굴도 이름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 이들은 인식의 문을 넘어 세계 안의 현실에서 자극받아 발생한 기억들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솟아난 기억이기 때문에 더 조절하기가 힘들다. 어느새 나타났다가 오래 머물고 간다.
이렇게 아무 데서도 기억에 대응되는 외적인 개별적 사건을 찾을 수 없을 때, 즉 외연이 결여되어 있는 기억은 그 결핍을 채울 만한 내적인 감정을 필요로 한다. 기억의 대응항을 잃은 결핍의 감정은 존재하고 있는 언어 목록 중에서는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 없지만, 이 범위 없는 감정들을 한데 이름하여 그리움이라고 부를 수 있다. 기억상실증이 존재하고 있는 외적 대응항에 대한 내적 인식을 불러내지 못하는 비극적 요소를 가리키고 있다면, 반대로 아무데도 없는 것에 대한 기억은 세계에 대한 결여를 지닌 비극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쪽의 결여가 더 깊고, 섧으며, 회복 불가능하다.
자다가 깨었을 때 전혀 생각나지도 않는 꿈에 눈물이 흐른다거나, 뜨고 지는 해에 따라 깃털 같은 구름이 갖가지 색으로 흩어지는 광경에 마음이 흔들린다거나, 차창을 두드리고 간 빗방울이 낯설지가 않다거나,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실제로 없었던 이별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기억이 그 대상을 찾아 헤매다 결국 안쪽으로 가라앉았다는 뜻이다. 아쉬움으로 인한 그리움이 우리를 채워 기억을 맞는다. 그리하여 존재하지 않은 일에 대한 기억은 항상 그리움을 데리고 다니며 뜬금없이 사람들을 방문하게 된다. 그는 언제나 예기치 않은 시간에 찾아온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릴 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밤에 자려고 눈을 감았을 때, 존재하지 않은 일에 대한 기억들은 조용히 우리를 깨워 밤중에 홀로 앉아 있게 한다. 없었던 일을 그리워하게 하며. 그렇지만 그 기억은 아무도 진정으로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그 기억이 마침내 세계 속에서 그에 대응하는 사건을 맞닥뜨릴 때까지는. 그리움을 밖으로 흘러넘치며 굳어 견고한 슬픔과 기쁨이 될 때까지는. 그동안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의 결핍된 감정을 깊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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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로맨스 약국」, pp.263-265.
어쩌면 예술이 사랑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문제들일지도 모른다. 주체의 윤리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해명하는 것 말이다. 이 물음에 쉬운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오히려 남는 문제는 어떻게 주체의 진리, 다시 말해서 자신의 운명이 비극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건 <올드 보이>가 제기했다가 스스로 폐기해버린 질문이기도 하다. “너희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바로 이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그러나 <올드 보이>는 서둘러 이 질문을 봉합했을 뿐이다. 남은 것은 최면을 통한 망각. 그리고 지루한 삶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앎과 함께 가는 삶이다. 앎과 함께 가는 광기, 여기에 법을 넘어가는, 자본주의의 포획을 넘어가는 힘이 있다. 이건 결단의 문제이고, 또한 이런 결단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거나, 아니면 예술을 해야 하는 건데, 둘 다 공히 뭔가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단에 바로 주체의 윤리가 작동한다. 물론 이 윤리라는 건 일반적으로 세속에서 운위하는 도덕이 아니다. 이 윤리는 도덕의 계율을 넘어선, 그 특이성의 작용이다. 그냥 참을 수 없는 고통의 향연, 이건 마치 오스카 와일드의 연애처럼 불온하고 부도덕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와일드의 연인은 알프레드 더글라스였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 어떻게 이성애와 평등한 것인지를 와일드의 사랑은 잘 보여준다. <심연으로부터>라는 옥중서한에서 와일드는 자신의 작품에서 다룬 얘기들을 직접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알프레드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쾌락이면서 동시에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감히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작품의 주제의식을 그는 삶 속에서 그대로 실현한다. 알프레드와 맺은 관계 때문에 재판을 받고 급기야 2년간 옥고까지 치러야했던 와일드는 출옥 후 알프레드에게 편지를 보낸다. “쓸데없이 이토록 오래 기다린 후에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침내 결심했다.” 그렇다. 이 결심에서 모든 것은 다시 시작한다. 이렇게 예술과 사랑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건 평범한 일상을 단번에 벗어던질 결심이다.- 이택광, 두 가지 변주곡 - 사랑과 예술, 새로운 주체의 공정 중에서.
(wallflower, 연세대학원신문 게재. 「무례한 복음」 pp. 236-237)
J. S. Bach
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after BWV 1068 (reconstruction of original version)
ii. Air
Ensemble Sonnerie
Monica Huggett, director
Christian Petzold (1677-1733)
Menuets BWV Anh.114-115
(from Notebook for Anna Magdalena Bach)
W. A. Mozart
Rondo in D Major KV485
Richard Egarr, fortepiano